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보를 알 수 없고, 감정이나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판단해도 틀리고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이런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AI가 인간이 다 확인하기 어려운 양의 정보를 검토하고 우리가 놓친 것을 찾아준다면 더 나은 판단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 영역을 보다 보면 ‘차라리 AI가 하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정치적 유불리가 판단에 영향을 주는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AI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 인간보다 상황을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 여러 선택이 가져올 결과까지 더 잘 예측하게 된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제안을 따랐을 때 실제 결과도 인간이 직접 결정했을 때보다 계속 더 좋다면, 사회의 중요한 결정까지 맡겨도 될까요.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AI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싶은데, 마지막 결정만큼은 왜 다시 그 불완전한 인간에게 남겨야 할까요.
250년 전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에 ‘our fellow subjects’라고 썼다가 ‘subjects’를 지우고 그 자리에 ‘citizens’라고 썼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던 때였습니다. 이 초안에서 ‘subject’는 군주의 통치 아래 있는 신민을, ‘citizen’은 새로 만들어질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 즉 시민을 뜻했습니다.
시민이 된다고 해서 법이나 정부 결정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중요하게 보는 차이는, 시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라는 점입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리고 내가 참여하지 않아도 사회가 더 잘 돌아간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시민이 직접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할까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시민의 참여는 정치적 권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도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줄어들면 시민의 역할도 줄어들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지키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회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거나 삶의 의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AI가 인간이 하던 일을 크게 줄인다고 해서 곧 더 나은 삶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이 줄어든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일을 통해 얻어온 역할과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 대한 기여도 경제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기여가 있다면 관계적 기여도 있습니다. 좋은 부모로 살아가는 일,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이웃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몫을 하는 일도 사회에 대한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경제활동에서 인간이 맡던 역할을 더 많이 대신하게 된다면 이런 관계적 기여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줄고 시간이 생긴다고 해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가 저절로 정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쓰고 무엇에서 의미를 찾을지는 여전히 각자에게 남습니다. 경제적 기여가 줄어든다고 해서 시민으로서의 역할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겁니다.
결정에 참여한다는 것
국방부가 AI를 활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다 보기 어려운 정보를 분석하고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 판단을 돕는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국방부 장관’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장관이나 대통령 같은 책임자는 AI에게 분석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분석을 검토하고 스스로 판단한 뒤 실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AI를 분석과 판단을 돕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최종 결정권까지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I는 여러 선택지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되는 결과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이해하지도, 검토하지도 않은 채 마지막에 승인만 한다면 실제로 판단한 것은 누구일까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판단하고, 우리가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결정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개인의 선택에도 책임이 있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함께 내린 결정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내린 결정이라면 그 결과도 결국 함께 감당하게 됩니다.
AI는 판단을 도울 수 있지만 그 결정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결정의 후폭풍도 대신 감당해 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 결과를 살아가고 감당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AI의 분석과 예측이 인간보다 훨씬 정확해지고, 그 제안을 따랐을 때 실제 결과도 계속 더 좋다고 해도 제 생각은 같습니다.
저에게 자유는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좋은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마지막 결정은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 선은 인간의 존엄과 본질에 맞닿아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
ARC 2026, Brendan McCord와 Liam Booth-Smith의 대담 「Would We Ever Let AI Govern Us?」
Library of Congress, 「An Important Revision: ‘Subjects’ Now ‘Citizens’ in Jefferson’s Declaration」


